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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설계하고, 하늘이 완성하다.

재미난 일상야그

by JihoYa~~ 2025. 4. 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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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설계하고, 하늘이 완성하다

서울 북촌의 한옥 골목, 낡은 붓글씨 간판이 걸린 조그만 설계사무소가 있었다.
‘청연건축사사무소’.
그곳의 대표, 윤도진은 사람의 마음을 담는 집을 짓는다는 철학을 가진, 고집스러운 건축가였다.

도진은 ‘완벽한 집’을 설계하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다. 단순히 튼튼하거나 예쁜 집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집.
그래서 그는 몇 년째, 작업을 하나도 맡지 않고 자신만의 설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사람이 설계하지만, 하늘이 완성하는 집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 오는 오후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도진이 고개를 들었다.
한 여자가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들어섰다.
그녀의 이름은 서나영. 10년 전, 도진과 함께 건축을 공부했던 친구였다.

“너 아직도 그 집 짓고 있니?”
“응. 조금 남았어. 거의 다 완성됐어.”
“그 집, 진짜 지을 수는 있을까?”
“언젠가는. 반드시.”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도진에게 부탁을 꺼냈다.
“우리 아버지 고향에 조그만 집 하나 지어줄 수 있을까?”
“갑자기 웬 집?”
“치매가 시작됐어. 돌아가시기 전, 어릴 적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대.”

도진은 망설였다. 지금 손을 놓으면, 평생 추구해온 이상이 멀어진다.
하지만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강원도 화천의 깊은 산골.
도진은 처음 그 땅을 밟은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나영의 아버지는 조용히 땅을 짚으며 말했다.
“여기, 내가 다섯 살 때 처음 뛰어놀던 자리여.”

도진은 나영과 함께 흙을 만지고, 바람을 읽고, 빛의 각도를 쟀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이상적인 구조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그 땅이 원하는 모양을 그려나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람이 설계하지만, 하늘이 완성한다’는 말은 단지 운명이나 영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의 흐름, 땅의 기억, 사람의 삶이 함께 설계에 참여해야 진짜 완성된다는 것.

**

세 달 후, 작은 돌담과 나무 지붕을 얹은 집이 완성됐다.
현관 앞에는 오래된 배나무가 서 있었고, 마당에는 조약돌이 깔려 있었다.
나영의 아버지는 그 집을 본 순간, 눈물을 흘렸다.
“이 집이 내 기억 속 그 집이야… 분명히 그래.”

도진은 그 말에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집은 도면 위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집은, 완성되어 있었다.

**

돌아오는 길, 나영이 물었다.
“이게 네가 찾던 그 집이야?”
도진은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가 설계한 건 절반도 안 돼. 나머지는 하늘이 채워줬어.”
“그럼 완성된거네?”
“그래. 드디어 완성됐어.”

**

서울로 돌아온 도진은 자신이 그동안 수백 장 쌓아놓은 도면을 꺼내 하나씩 불태웠다.
그는 더 이상 ‘완벽한 집’을 설계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그는, 집을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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