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귀와 마음이 동시에 열리는 강연을 들었어요.
생태학자이자 인문학자, 그리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가 느껴지는 최재천 교수님의 인문학 아카데미 강연이었는데요.
주제는 바로 ‘다양성과 공존’. 익숙한 말이지만, 교수님의 이야기 속에서는 그 익숙함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강연의 시작은 자연에 대한 이야기로 열렸습니다.
자연은 애초부터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간이었고, 이 ‘다름’ 덕분에 생태계는 수천, 수만 년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고요. 그런데 인간 사회는 점점 하나의 정답, 하나의 기준만을 강요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다름은 곧 틀림으로 간주되고, 다양성은 복잡하고 귀찮은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죠.
이런 관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교수님은 조류독감 사례로 설명하셨어요.
자연에 사는 철새들은 유전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 종에 병이 돌아도 전부가 다 감염되지는 않아요. 생존 확률이 남아 있는 거죠. 반면, 공장식 사육장에서 자란 닭들은 거의 유전자가 똑같기 때문에, 하나가 병에 걸리면 순식간에 전부 퍼지고 막대한 피해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결국 다양성이야말로 생존의 기본 조건이라는 걸 생태계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말씀이었어요.
문화적인 다양성 이야기도 정말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흔히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이라 생각하고,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는데, 교수님은 그건 사실 신화에 가깝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한국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세와 교류하며 다양한 피가 섞였고, 그게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다고요. 유전자가 섞여 있다는 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는 사실.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존재들이라는 점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코로나19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어요. 교수님은 이 팬데믹의 원인 중 하나로 ‘자연과의 무분별한 경계 침범’을 지목하셨어요.
인간이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서, 동물의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넘어올 기회를 만들어 줬다는 거죠. 결국 자연은 지배나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잊고 있었다는 반성이 따라왔습니다.
공존.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참 어렵죠.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처럼, 진짜 공존은 서로를 똑같이 만드는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과 다른 사람의 방식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가능할 때, 진짜로 평화롭고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르게 판단하고, 너무 쉽게 나누고, 너무 자주 혐오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강연을 들으면서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작은 힌트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자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오만해서 그걸 못 봤던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말. 그리고 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는 말. 너무도 당연한 진리인데,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내 일상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강연이었어요.